노아 방주에 타고 있는 용
: 지그문트 2세의 벽걸이 융단에 그려져 있다.
(Dragons on Noah’s Ark, The tapestries of Sigismund II Augustus)
Philip Robinson
폴란드 크라코프 성(Krakow Castle, Poland)의 벽에는 16세기의 왕실 벽걸이융단(tapestries, 태피스트리)들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때때로 이것들은 ”야기엘론니안 태피스트리(Jagiellonian tapestries)”로 불려지는데, 리투아니아 대공(Grand Duke of Lithuania)으로 폴란드 국왕이었던,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Sigismund II Augustus, AD 1520-1572)에 의해서 대부분 모아졌다. 136개의 태피스트리(벽걸이융단)에는 성경 창세기의 19개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 아담과 하와 이야기(7개), 노아 홍수 및 방주 이야기(8개), 바벨탑 이야기(4개).[1] (사진들은 여기를 클릭)
.지그문트 2세의 태피스트리(tapestry) 중의 하나 : 노아 방주에 타고 있는 동물들. (Brussels, c. 1550, © Wawel Castle, Cracow, Photo by Lukasz Schuster)
처음 두 세트는 브뤼셀로부터 1500년대 중반에 주문되었고, ”플라망 사람 라파엘(Flemish Raphael)”로 알려진 미힐 콕시(Michiel Coxie, 1499-1592)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태피스트리들은 지그문트가 세 번째 부인인 오스트리아의 캐서린(Catherine)과 결혼할 때인, 1553년에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이 아름답고 복잡한 태피스트리는 최대 45m²의 크기로 매우 인상적이다.
.또 다른 태피스트리(tapestry) : 노아 방주에서 내리고 있는 동물들. (Brussels, c. 1550, © Wawel Castle, Cracow, Photo by Lukasz Schuster)
왜 태피스트리 제작자는 노아의 방주에 용을 그려 넣었을까?
홍수 이야기를 담고 있는 8개의 태피스트리들에는, 노아 방주에 타거나 내려오는 동물들의 모습이 담긴 두 장의 태피스트리가 있다. 그들 중 사자, 낙타, 소, 여러 새들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3] 그러나 명백하게 용(dragons)처럼 보이는 동물도 있었다.
성경 본문과의 일치성
왜 태피스트리 제작자는 노아의 방주에 용(dragons)을 그려 넣었을까? 태피스트리 꼭대기에 쓰려진 라틴어 비문은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무신론자들은 비웃고 있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모든 종류의 동물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고 있다. 창세기 7장.” 제작자는 성경, 특히 창세기 7장의 내용을 그렸다. 이 장은 3번이나 상세히 그려졌는데, 전 지구적 대홍수가 시작되기 전에, 모든 종류의 육상동물들, 날개 달린 생물들(14절), 즉 생명의 기운이 있는(코로 호흡을 하는) 모든 생물들'(15, 22절)이 노아의 방주에 들어갔다.
그래서 성경 본문과 완전히 일치시키기를 원했던 예술가는 노아 방주에 들어가는 동물 목록에 용을 포함시켰다.
노아 홍수를 묘사한 태피스트리가 제작될 당시에, 많은 자연사 책들은 모두 용(dragons)들이 실제로 존재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공룡이라 불려진다. 아래 박스 글을 보라). 현대의 한 세속적 책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용에 대한) 증거는 자연사와 문학 작품에 국한되지 않고, 일상적인 사건 기록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용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는 풍문이나, 익명의 사람들에 의한 소문이 아니라, 왕, 기사, 수도사, 대주교, 역사가, 학자, 성인들에 의해서 기록되었다.”[4]
그래서 성경 본문과 완전히 일치시키기를 원했던 예술가는 노아 방주에 들어가는 동물 목록에 용도 포함시켰다. 오늘날 멸종된 동물들도 일부는 그 당시에 매우 소수로 존재했을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동물에 친숙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1500년대에 그가 사용할 수 있었던 자료들에 의존해야했을 것이다. 용에 대한 묘사는 수세기에 걸쳐 많은 장식물들에 등장해왔다. 지그문트 2세의 태피스트리에도 용은 반영되어 있지만, 이것들조차도 여전히 공룡의 특징을 갖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이 태피스트리는 우리 주변의 자연세계를 바라봐야하는 틀을 성경이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육상동물들과 날개 달린 생물들이 노아의 방주로 들어갔다는 것을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일 때, 이것은 분명히 공룡들도 방주로 들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이 사건에 대한 묘사를 우리가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공룡과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이 사건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성경의 역사가 신화이며, 사람들이 출현하기 오래 전에 공룡들이 번성했다는 세속적 주장에 굴복하는 것이다. 세속적 관점으로는, 공룡/용은 중생대에 번성했고, 다른 많은 생물 화석들처럼 고통 속에 죽어갔으며, 사람이 진화로 출현하기 오래 전에 멸종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완벽하게 창조하셨으며, 죽음과 고통은 사람의 죄로 인해 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성경의 가르침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따라서 노아 방주 안으로 공룡과 익룡이 들어가는 것을 보여줄지 아닐지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신뢰성 및 복음의 신뢰성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은 공룡과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종류의 생물들이 6일 동안에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 '선사시대'나 중생대 같은 것이 들어갈 여지는 없다. 노아 방주에 들어가는 동물에 공룡을 포함시키는 것은, 그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며, 멋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사자, 기린, 코끼리와 같은 '친숙한' 동물들만 들어갔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을 화석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썼던 이솝 우화 같은 것으로 만드는 일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당시의 태피스트리 예술가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다. 그 예술가는 성경의 기록을 충실하게 믿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용은 공룡인가?
용(dragons)은 실제로 사람들과 함께 살았던 생물로서, 많은 문헌들에 쓰여져 있고, 지난 수천 년 동안 모든 대륙의 많은 문화들과 사람들이 남겨놓은 그림, 도자기, 예술품, 문헌, 암벽화 등에 묘사되어왔다.[1]
이러한 용에 대한 묘사에 신화적 요소가 일부 추가된 것도 있지만,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목격담의 일관성은 용들이 실제로 존재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용이 화석기록으로 알려진 공룡과 멸종된 다른 파충류들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용'은 단순히 ‘공룡’에 대한 구어체 용어였다.
이 '용' 화석들은 수천만 년 되지 않았다. 그들은 창조된 이후 1656년 정도가 지나서 일어났던 전 지구적 홍수 때에 파묻혔다. 1800년대 초에 용의 뼈들이 '재발견'된 이후, 오늘날 그것들을 공룡 또는 익룡(또는 날개 달린 파충류)이라고 불려진다. 육상공룡들은 각 종류의 한 쌍씩(아마도 몸체가 작은 어린 동물들로) 노아 방주에 탔고, 전 지구적 홍수에서 살아남아 사람과 함께 살아오다가 최근에 멸종했던 것이다. 이것은 왜 용(공룡)이 전 세계의 많은 문헌, 그림, 도자기, 예술품 등에 남아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이 주제에 관한 최고의 책 중 하나인 ”행성 지구에서 말해지지 않는 비밀 : 무시무시한 용들(Untold secrets of Planet Earth : Dire Dragons)”은 놀라운 사진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References and notes
Grigg, R., Dinosaurs and dragons: stamping on the legends, Creation 14(3):10–14. 1992; creation.com/dinolegen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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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Piwocka, M., The Tapestries of Sigismund Augustus, Wawel Royal Castle State Art Collections, Krakow, 2007.
2. Fabianski, M., On King, Priest, and Wanton Girls: Looking at Flemish Renaissance Tapestries in Krakow, Source: Notes in the History of Art 29(2):8– 14, Winter 2010.
3. Modern creationists recognize that such modern-day animals were not on the Ark as such, being varieties of the kinds that were created—see creation.com/arkanimals.
4. Hogarth, P. and Clery, V., Dragons, New York, Viking Press, pp. 13– 14, 1979.
*관련기사 : 용(dragon)은 상상의 동물인가, 공룡인가? (2018. 9. 9.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1583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ation.com/dragons-on-noahs-ark
출처 - Creation 39(1):14–15, January 2017.
타이타닉 호와 노아의 방주
(Titanic Remake More like Noah's Ark)
by Brian Thomas, Ph.D.
1912년 4월 14일 타이타닉 호의 침몰은 현대에서 가장 유명한 항해 사고였다. 그러나 전 지구적 홍수를 견뎌낸 노아 방주는 고대에서 가장 유명한 성공적 항해 사례이다. 설계 사양이 그 차이를 만들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타이타닉 II (복원 계획 중인 동일 크기의 호화 여객선)가 첫 번째 타이타닉과 다른 설계 사양을 갖는 이유를 설명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이타닉의 침몰이 빙산 충돌에 의한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1985년 잠수정으로 난파선을 살펴보았을 때, 그리고 이후 회수된 타이타닉 선체 부분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배는 침몰 전에 두 부분으로 부러졌음을 보여주었다.[1] 아마도 타이타닉은 조금 좁았을 수 있다.
1세기도 더 이전에, 타이타닉 호가 사우샘프턴에 정박했을 때, 길이는 883피트(250m), 폭은 가장 넓은 부분에서 93피트(28m) 였다. 타이탄 II는 거의 동일한 길이를 가지고 있지만, 그 폭은 13피트(4m) 정도 추가되었는데, 그 이유는 현대 해상 표준과 일치시키고, 안정성을 증가시키기 위해서였다. 또한 더 많은 구명정이 장착될 예정이다.[2]
최초 타이타닉 호의 길이 대 폭의 비율은 약 9.5 : 1 이었다. 타이타닉 II는 약 8.3 : 1의 비율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지시했던 사양에 따르면, 방주는 6 : 1의 비율이다. 방주는 타이타닉 II 보다 길이에 비해 폭이 좀 더 넓다.
선박의 두 다른 유형은 두 다른 목적을 수행한다. 모터로 구동되는 선박은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물을 가르며 미끄러져 나가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방주는 무동력의 배로 단지 거대한 홍수를 견뎌내기 위한 바지선이었다. 이것은 타이타닉과 타이타닉 II, 또는 다른 동력 선박들이 길이에 비해 좁은 폭을 가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유선형의 디자인은 배가 좀 더 효율적으로 나아가도록 해준다. 그러나 방주는 이동해 나갈 필요가 전혀 없었다. 노아의 방주는 오직 거친 바다에서 견뎌내는 것만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늘날의 대양을 오가는 선박들이 노아 방주의 길이-폭 비율을 갖고 있을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타이타닉 II에서 폭을 늘리는 것은 안전성을 추가시키는 일이다.
타이타닉호 II 에서 보다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시도는 의도하지 않게,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설계를 기억나게 해주는 것이었다. 방주는 생물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내구력, 안락성, 안정성에서 완벽하게 균형 잡혀있는 것이다.[3]
References
1. Ewers, J. The Secret of How the Titanic Sank. US News and World Report. Posted on usnews.com September 25, 2008, accessed May 3, 2016.
2. Titanic 2 Ship—Australian billionaire's project to revive RMS Titanic in 2018. Posted on titanc2ship.com, May 3, 2016. This website says the Titanic II will be 833 feet long, but this is likely a typo since the original Titanic was 883 feet long. See its Wikipedia page for more information.
3. Hong, S. W. et al. Safety investigation of Noah's Ark in a seaway. Journal of Creation (formerly TJ). 8 (1): 26-36.
Image credit: © 2015 Blue Star Line. Adapted for use in accordance with federal copyright (fair use doctrine) law. Usage by ICR does not imply endorsement of copyright holders.
*관련자료 : 타이타닉호 침몰 과정을 재현한 2시간 40분 영상 (2016. 4. 24. 위키트리)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25742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9350
출처 - ICR News, 2016. 5. 19.
노아의 방주는 어떻게 안전하였을까?
이경호
창세기 7장에서 노아시대 대홍수를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대홍수가 단순한 홍수가 아닌 전 지구적 대격변임을 설명하고 있다. 지하수의 폭발, 용암분출, 조산운동, 궁창(대기권) 위의 물이 쏟아지는 등 엄청난 전 지구적인 격변에도 노아가 탄 방주는 어떻게 안전했을까? 이것에 대한 조선공학적인 측면에서 과학적 비밀을 살펴보자.
우선, 방주(Ark)란 무엇일까? 방주는 ‘네모 상자형의 배’를 의미한다. 그러나 방주와 배는 차이점이 있다. 첫째, 방주는 배와는 달리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추진 능력이 없다. 둘째, 방주는 방향을 잡을 수 있는 키가 없다. 단순히 떠있기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왜 파도를 피할 수 있는 멋있는 배가 아니라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을까? 여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원하셨던 것은 "네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방주 속에서 잠잠히 기다리라"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 같다. 우리의 구원이 그런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방주의 크기는 길이가 300규빗, 폭 50규빗, 높이가 30규빗 (135m x 22.5m x 13.5m)으로 21,000톤 정도이고 고르페나무(개역성경에는 잣나무로 번역됨)로 만들어졌고, 3층 구조이며, 1개의 출입문과 천정에 환기구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나님께서 방주의 설계도를 주신 것이다. 그런데 과연 현대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도 노아의 방주는 안전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한국창조과학회에서는 필자가 속해 있었던 선박에 관한 전문 연구소인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당시 해사기술연구소)에 방주의 안전성평가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하였다. 연구소의 실험 시설은 세계적으로 공인된 실험 시설로서 여기에서 실험된 결과에 대해서는 과학적 신뢰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는 세계 최초로 세계적으로 공인된 실험 시설과 선박전문 연구기관에서 수행한 세계 유일의 연구로 평가받고 있다.
‘과연 방주가 과학적으로 안전할까?’ 염려 반, 기대 반으로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이 당시 연구는 선박의 안전성 평가를 위한 3가지 관점(현대 선박에서도 적용), 즉 구조적 안전성, 복원 안전성, 파랑 안전성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방주 모형을 만들어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하거나 실제로 제작한 모델을 대형 수조(Model Basin) 띠워 직접 실험하였다. 실험을 위해서 21,000톤(방주의 크기) 배수량을 제한 조건으로 하여, 길이, 폭, 높이 등을 변형하여 13척에 대한 상대 평가를 수행하였다. 구조적 안전성은 파도에 따른 하중조건이 바뀜에 따라 방주가 구조적으로 부러질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노아의 방주는 구조적으로 매우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복원성은 오뚝이와 같이 파도에 따라 방주가 좌우로 흔들릴 때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려고 하는 성질을 의미한다. 지난 세월호 사건을 계기로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선박의 복원성 전문가가 된 것 같다. 사실 방주와 같이 네모 상자형의 부유체는 복원성 측면에서는 매우 우수할 수밖에 없다. 파랑 안전성은 내항성능으로 방주에 탄 사람과 동물들이 얼마나 쾌적함을 느끼는가 하는 것이다. 배를 타면 대부분 멀미를 하게 되는데, 방주에 탄 가족과 동물들은 1년 10일 정도를 높은 파도 속에서 살아 남아야했다. 우리는 1시간만 배를 타도 멀미하고 죽을 것 같은데 과연 가족과 동물들은 괜찮았을까? 노아의 방주는 파랑 안전성 측면에서도 현 여객선 기준보다 훨씬 더 안전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실제 파고 30m 이상에서도 운항이 가능하며, 이론상으로는 43m 까지도 가능하였다.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높은 파고가 32m라고 보았을 때 방주는 현대 조선공학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안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방주는 파도가 침에 따라 방주의 선수부를 파도가 치는 방향으로 틀려는 성향을 가짐으로 스스로 환경에 안전하게 적응해 가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지혜와 설계로 만들어진 노아의 방주가 현대 과학적으로도 얼마나 안전하게 설계 되었는지를 확인하면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구체적인지 더욱 알게 되었다. 노아의 방주를 통해 심판의 현장에서 노아를 구원하신 역사적 사건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그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며 다시 감격하게 된다.
노아 방주의 가능성에 학생들이 놀라다.
(Students Surprised to Find Noah's Ark Feasible)
by Brian Thomas, Ph.D.
레스터 대학의 물리학과 학생들은 성경에 기록된 치수대로 노아의 방주가 건조된다면, 7만 마리의 동물들을 실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과제를 수행했다. 학생인 카일 레이머(Kayie Raymer)는 다른 신중한 임무들을 수행한 후, 이것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 지에서 말했다. 그들이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학생들은 노아 방주의 전체 크기를 추정하기 위해서 한 규빗(cubit)의 길이로 48.2cm를 사용했다. 물의 밀도와 부력에 관한 아르키메데스 원리를 사용하여, 그들은 방주가 침몰 없이 실을 수 있는 총 적재량을 계산했다.
텔레그래프 지에 따르면[1], 이전 연구는 노아의 방주에 태워야할 동물 종들을 약 35,000 종(species)으로 제안했었다는 것이다. (이 평가에 대한 출처는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학생들은 방주에 들어갔을 동물들을 암수 한 쌍으로 계산하여 대략 7만 마리로 평가했다. 놀랍게도, 이 무게는 노아의 방주에 적재할 수 있는 총 적재량을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리학과 학생인 토마스 모리스(Thomas Morris)는 텔레그래프 지에서 말했다 : ”사람들은 성경을 과학적으로 정확한 정보의 출처로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행했던 연구 결과에 대해 우리는 매우 놀랐다.” 학생들은 그 결과를 레스터 대학의 Physics Special Topics 저널에 발표했다.
사실 방주에 70,000 마리의 동물들을 태울 수 있다는 학생들의 결과는 성경에서 예측하는 동물 수보다 많은 숫자이다. 실제로 노아의 방주에는 이보다 적은 수의 동물들이 탔을 것이며, 운항에 필요한 먹이와 물까지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충분했다.
생물들은 창조된 ‘종류(kinds)’ 또는 기본적 형태 내에서 다양하게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노아는 육상에서 코로 호흡을 하는, 모든 생물 '종(species)'들을 태울 필요가 없었다. 현대적 분류 기준인 ‘종’은 그것을 사용하는 연구자들만큼 많은 정의를 갖는 것으로 보여진다.
창세기에 기록된 세부적 사항에 따르면, 방주에 태워진 동물들의 숫자는 어느 정도나 될까? 만약 ‘종류(kinds)’ 대신에 오늘날의 분류 기준인 ‘종(species)’을 기준으로 계산한다면, 방주의 용량을 넘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창조 생물학자들은 종류라는 분류 기준이 오늘날의 '아과(subfamily)' 또는 '과(family)'에 해당하며, 종류 내에 다양한 종들이 포함될 수 있다는 많은 자료들을 제시해오고 있다.[2] 예를 들어, 육종 연구에 의하면, 참새와 핀치새는 같은 종류 내에 속하는 생물로 보고 있다.[3] 1,000여 종 이상의 참새 또는 핀치새 대신에, 아마도 14종류 정도의 새들이 방주에 탔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 원리를 모든 '종(species)'들에 적용하면, 레스터 대학의 학생들이 예상했던 70,000 마리의 동물들의 수는 극적으로 줄어든다. 창조론자인 존 우드모라페(John Woodmorappe)는 그의 책 ”노아의 방주: 그 타당성 연구(Noah's Ark: A Feasibility Study)”에서, 노아 방주에 태워졌던 동물들은 육상에 거주하며, 공기로 호흡을(코로 기식을) 하는, 현존하거나 멸종된 동물 과(families)들로 보고, 그 숫자를 (정결한 짐승과 새들 7쌍을 포함하여) 약 8,000 종류의 16,000 마리로 평가했다.[4] 이들의 부피는 방주 용량의 1/3에 불과하며, 남은 곳은 식량 저장과 노아 가족들이 거주할 공간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성경의 정확성이 테스트될 때마다 입증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텔레그래프 지에 따르면, 레스터 대학의 물리학과 학생들은 노아의 방주가 동물들을 태우고 물에 뜰 수 있는 것을 발견하곤 놀랐다는 것이다.[1] 성경의 기록처럼, 방주가 단지 물에 뜰뿐만 아니라, 동물들과 노아의 가족들을 싣고 일 년여에 걸친 노아 홍수를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더 놀랄까? 성경은 영적 진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에 의심했던 것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기록임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References
1. Knapton, S. Noah's Ark would have floated...even with 70,000 animals. The Telegraph. Posted on telegraph.co.uk April 3, 2014, accessed April 3, 2014
2. Henigan, T. An Initial Estimate toward Identifying and Numbering the Ark Turtle and Crocodile Kinds. Answers Research Journal. 7 (2014): 1-10.
3. Lightner, J.K. 2010. Identification of a large sparrow-finch monobaramin in perching birds (Aves: Passeriformes). Journal of Creation. 24 (3): 117-121
4. Woodmorappe, J. 1996. Noah's Ark: A Feasibility Study. Santee,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8039/
출처 - ICR News, 2014. 4. 11.
홍콩 NAMI 팀이 2010년 노아 방주의 잔해로
주장했던 목재 시료에 대한 C-14 측정 결과.
(Top Geologist Releases Data on Noah's Ark Claim)
창조과학자(Answers in Genesis의 책임 연구원)로서 유명한 지질학자인 앤드류 스넬링(Andrew Snelling) 박사는 최근에 2010년 아라랏 산에서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던 홍콩 NAMI 팀이 제공한 방주의 잔해로 추정하는 목재 시료에 대한 방사성탄소(C-14) 연대측정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다.
여기 스넬링 박사의 보고서를 읽어보라 :
Is the Wood Recently Found on Mt. Ararat from the Ark? (2011. 11. 9. AiG)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id/v6/n1/mt-ararat-wood
*Dr. Snelling is formerly a professor of geology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is author of the book Earth’s Catastrophic Past.
*참조 : The Search for Noah’s Ark with Dr. Don Patton
: Noah’s Ark Ministries International Fraud exposed! (NAMI)
Has the Ark Been Found?
https://answersingenesis.org/noahs-ark/noahs-ark-found/has-ark-been-found/
Noah’s Ark, or … what?
https://creation.com/noahs-ark-or-what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article/6440/
출처 - ICR New, 2011. 11. 11.
노아는 어떻게 모든 동물들을 돌볼 수 있었을까?
(How could Noah care for all the animals?)
Harrie Tjoelker
당신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일 년간 방주에 있는 동안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동물들을 돌볼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았는가? 그것은 성경 회의론자들이 종종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하게, 노아와 그의 가족이 모든 우리를 매일 청소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그러나 그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세계의 어떤 곳에서는 겨울동안에 수개월씩 농부가 자기 동물들을 실내에 모아두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노아의 임무와 비슷하다. 그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 문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 중 한 가지를 보인 것이 그림 1이다. 그림은 네덜란드에 있는 외양간(양우리)의 내부로서 ‘postal’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1] 나무 기둥 기초에 있는 돌 받침을 주목하라. 이들이 있음으로 해서 겨울에 배설물들이 쌓여도 나무 기둥이 수년간 썩지 않을 수 있다.
그림 1. ‘potstal’ 양우리 내부. 돌기둥 아래 부분의 얼룩을 보라. 겨울 동안에 배설물이 쌓이는 높이를 나타낸다.
동물 배설물로 인하여 더러워지면 농부는 지속적으로 밀짚(혹은 토탄이나 톱밥)을 기존의 층위에 더해주면 된다. 겨울 끝 무렵에는 ‘깔깃’ 층이 거의 0.5미터 정도로 높아진다. 비록 배설물이 쌓이더라도 환경은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달콤한 냄새가 난다. 그러한 외양간에 소와 말을 수용할 수 있다.
과거에는 Potstal을 많이 이용했었고, 지금도 환경 친화적 농장에서 널리 사용한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30마리 가량의 양을 길렀는데 Potstal을 사용했었다. 우리 이웃(직업적 농부)은 그러한 외양간에서 130마리 이상의 양을 사육했었다. 그보다 더 많은 양이 있더라도 그 외양간은 깨끗하고 위생적이며 안락했다. 공간과 노동력을 아끼기 위해 농부들은 종종 Potstal 안에 동물들 위로 깨끗한 밀짚을 보관한다.
냄새가 나는 유일한 경우는(내가 분명히 기억한다) 겨울이 끝날 때 외양간을 청소할 때이다. 생태 친화적 농장에서는 일 년에 한 번 또는 두 번만 외양간을 치워주면 된다. 노아에게 있어서 거름은 난방을 위한 연료로 사용하는데 유용했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배설물로 최적의 비료를 만든다.
또 다른 종류의 외양간으로 ‘grupstal’(그림 2)이라는 것이 있다.[2] 내가 자란 곳의 많은 농부들이 이런 종류의 외양간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그것을 사용하고 있다. 이 외양간에는 동물들을 예를 들면 밀짚 같은 바닥 위에서 사육한다. 그들 뒤에 있는 ‘gutter’(네덜란드의 고어로 ‘grup’)에 거름과 오줌을 모은다. 이런 종류의 외양간은 청소하기가 쉽다. 즉, 거름을 저장탱크로 밀기만 하면 된다. 비교적 적은 양의 밀짚만 있으면 된다. 노아가 이와 같은 시스템을 이용했다면, 외양간을 깨끗하게 씻어내기 위해 물(공급이 달리지 않았다!)을 이용하여 배설물을 바다로 배출하면 되었다.
그림 2. ‘grupstal’ 내부. 동물들은 바깥벽에 있는 ‘담장’에 체인으로 묶여있고, 그쪽에서 먹이를 공급받는다. 배설물은 가운데 있는 홈통으로 떨어진다. 농부가 동물을 위해 깨끗한 밀짚을 공급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주목하라.
이런 종류의 외양간에서는 동물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것도 쉬웠다. 외양간의 머리 부분에 있는 홈통에 먹이를 던져 넣기만 하면 된다.
우드모라페(John Woodmorappe)는 그의 책 ”노아의 방주: 가능성 연구(Noah's Ark: A Feasibility Study)”에서 노아가 동물의 배설물을 취급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들을 먹이고 물을 공급하기 위해 노아가 방주에서 사용할 수 있었던 노동 절약형 기술을 몇 가지 연구했다.[3]
추운 기후에서 동물을 돌보는 방법을 우리가 조금만 안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은 특히 놀라운 방주를 짓는 기술을 가졌고 독창력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 일이 노아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은 여러 해를 두고 방주에 둘 외양간을 준비해 왔고, 거기에는 장비와 비축물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참고문헌
[1] Potstal, <www.drenthe-net.nl/schaapskudde/2002/f0236.html>에 가면 많은 그림들이 있다.
[2] Grupstal은 이런 종류의 외양간에 대한 네덜란드식 이름이다.
[3] Woodmorappe, J., 'Noah's Ark : A Feasibility Study',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California, USA, 1996.
번역 - 이종헌
주소 - https://creation.com/how-could-noah-care-for-the-animals
출처 - Creation 30(1):50-51, December 2007.
고해상도 이미지로 만들어지는 아라랏 산의 비정상적 물체
(Ararat Anomaly to Be Imaged in Hi-Res)
터키의 아라랏산(Mt. Ararat) 4,600m 고도에 있는 흔치않은 구조인 ‘아라랏 산의 비정상적 물체(Ararat anomaly)’가 고해상도의 위성 영상으로 자세히 조사되고 있는 중이다. Satellite Imaging Corporation의 포쳐 테일러(Porcher Taylor)는 이코노스 인공위성(Ikonos satellite) 자료로부터 그 장소에 대한 3-D 항공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레오나드 데이비드(Leonard David)는 Live Science에서 보도하였다. 그리고 내년에 발사될 Geo-Eye I 위성은 픽셀 당 0.4m로 그 장소의 해상도를 두 배 증가시킬 것이다.
빙하 아래에 묻혀있는 아라랏 산의 비정상적 물체는 일부 해석들에 의하면, '그 물체의 비교적 매끄러운 표면 조직(smooth surface texture)과 특이한 물리적 구조” 때문에 주목을 끌어왔다. 몇몇 사람들은 그곳을 노아 방주(Noah’s Ark)의 잔해가 있을 가능성이 있는 장소로 생각해오고 있다.
Live Science가 이 이야기를 꽤 공정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은 멋진 일이다. 신기원을 이룩하고 있는 구글 어쓰(Google Earth)와 고해상도 사진들은 이 유명한 산에 있는 물체에 대해서 빛을 비춰줄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몇 십년 동안 정치적 긴장, 지역적 위험성 등은 노아방주의 탐사를 어렵게 하고 좌절시켰다.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영상들은 훨씬 쉽게 증거들에 대한 엄밀한 조사를 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져 온 목격자들의 증언은 방주 탐사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주어왔다. (noahsarksearch.com을 보라). 그러나 지금까지 수집된 자료들 중에는 일찍이 흥미로운 고고학적 유물들이 발견되었던 가능성 있는 장소를 배제하기도 한다. 그리고 방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목재로 된 구조들이 아직까지 남아있을지 의심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일부 사람들은 심지어 아라랏 산이 정확한 장소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한다.
목격자들의 감질나는 설명들은 노아의 방주를 비판하는 회의론자들을 확신시킬만한 결정적 증거는 되지 못하고 있다. 조용하게 더 많은 증거들을 수집해서, 어떠한 변명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최선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200709.htm ,
출처 - Creation-Evolution Headlines, 2007. 9. 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016
참고 : 1455|3032|721|708|2409|1976|458|3407
노아의 방주가 이란에서 발견되었는가?
(Has Noah’s Ark Been Found in Iran?)
by John D. Morris, Ph.D.
성경은 노아의 방주(Noah's Ark)가 ‘아라랏 산(the mountains of Ararat)’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져서, 다른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구절은 특별한 산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라랏(Ararat, 또는 Urartu)은 한 고대 국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라랏 산(the mountains of Ararat)이라는 구절은 ‘스페인의 산(the mountains of Spain)’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지역에는 한 유명한 봉우리가 있다. 그리고 그곳은 오늘날 (적어도 서반구에서는) 아라랏 산(Mt. Ararat)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 근처에 살고 있으며 그곳을 그들의 조상들의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아르메니아(Armenians) 사람들처럼, 터키 사람들은 그 산에 대한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산은 홍수 이후 여러 번 폭발했었던 화산(volcanic mountain)이다. 마지막 커다란 분출은 1840년에 있었다.
노아 방주의 잔해가 오늘날에도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가리키는 여러 증거들이 수집되어 왔다. 그리고 지금까지 방주를 목격했다는 수백 명의 목격자들이 있어 왔다. 그들의 증언들은 어느 것도 매우 상세하지 않았으며, 조사자들 사이에 그 위치에 대한 많은 불일치가 존재하였다. 내 의견으로는, 다른 어떠한 가능성보다 현재의 아라랏 산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산은 많은 탐험가들의 주의를 끌어왔었다. 성경은 홍수 이후에 방주의 보존이나, 미래의 발견에 대한 예언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말로, 모든 탐사에서 집중적인 관심의 초점을 받는 것은 오직 이들 목격자들이다. 1960년 이후, 많은 탐사대들이 방주를 발견하기 위해서 출발했었다. 탐사의 대부분은 오늘날 터키 동부의 아라랏산에 집중되어졌다. 많은 단서(hints)들이 발견되어 왔지만, 아무도 방주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proof)를 가져오지 못했다. 아라랏산에서 방주가 발견되지 않음은 일부 사람들에게 다른 가능한 장소들을 고려하도록 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한 장소가 최근 뉴스에서 등장하였다. 크리스천 탐험가인 밥 코누크(Bob Cornuke)가 이끄는 몇 명의 미국인들은 방주 모양의 지형을 조사하기 위해서 이란의 테헤란 북쪽의 산들을 여행하였다. 코누크는 전통적인 장소를 넘어 이 지역에 흥미를 느꼈고, 성경의 단서들을 따라 2005년에 그 모양을 발견했었다. 그 장소는 애매하지만 가장 중요한 목격자의 기술 중 하나와 일치하였고, 조사할 가치가 있었다.
나는 1980년대 말에 터키의 아라랏 산에서 코누크를 만났었다. 우리는 그곳에 같이 있었고, 우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이후 간혹 같은 사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접촉을 유지해 왔었다. 코누크는 첫번째 이란 여행으로부터 돌아와, 나와 ICR의 다른 지질학자들에게 그가 발견한 몇 장의 사진들을 보내어왔고, 우리들의 평가를 요청했었다. 불행히도 그는 우리들에게 보여줄 어떠한 표본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따라서 그 발견을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들의 만장일치된 의견은, 그것은 단지 흥미로운 지질학적 지형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고 더 조사해볼 가치는 있지만, 그러나 퇴적암(sedimentary rock)인 것 같다는(어떤 모습은 변성되어진 것으로 나타났지만) 것이었다. 층을 보이는 것은 명백히 물의 작용에 의한 침전물들의 퇴적에 기인했거나, 방향성 압력에 의한 변성작용에 기인하였을 가능성이 있었다. 아마도 나무의 입자로 오인되었던 것은 암석 물질들이 얇게 층을 이룬 규산성 사암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국소적인 파쇄가 표면적으로 두꺼운 나무 목재들인 것처럼 만들었을 것이다. 주의깊은 지질학적 현장 조사 없이, 그것의 지사학을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고고학적으로 방주의 기원을 가리키는 것은 거의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코누크에게 그의 발견이 노아의 방주라는 어떠한 독단적인 주장에 반대한다고 주의를 주었었다. 노아의 방주와 같은 중요한 발견은 확실하고 견고한 증거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의 증거들은 의심스러웠다.
코누크는 금년 초에 몇몇 잘 알려진 크리스천 학자들과 그 장소를 다시 여행했다. 그리고 고화질의 사진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팀은 라디오와 TV 쇼에 여러 번 출연하였고, 방주가 마침내 발견되었다는 확실한 인상을 남겨 놓았다. 나는 코누크가 방주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시청자나 청취자들은 어떻든지 방주가 발견됐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의 다른 동료들은 이같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위대한 발견을 하였다고 대담하게 주장하였다.
그 주장은 그 물질들이 석화된 나무(petrified wood)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석화목은 전 세계 수천의 장소에서 발견된다. 그곳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마도 방주는 석화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에서 일어났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 일련의 사건과 상황들을 필요로 한다. 나무는 화산성 재에 파묻혀질 때, 가장 석화가 잘 일어난다. 그러나 그 팀은 발견 지역이 화산성 지역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정확한 그 지역 지도와 조사 없이, 그들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덧붙여서, 단지 부분적으로 석화되어 있는 풍부한 바다 화석들이 근처에서 보고되었는데, 이것은 그 후에 변성작용이 없었던 퇴적 기원을 증거하고 있었다. 한 나무 조각 안에 바다생물 화석이 파묻혀 있는 것이 보고되었다. 화석(암석들과 마찬가지로)들은 홍수로부터 생겨났지만, 확실히 방주 위에서는 아니다. 방주는 생물들이 퇴적물 속에 파묻히고 난 후, 그 지역의 물이 빠져나가는 동안 산지에 정박하게 되었고, 그때 이후 물 아래로 놓여지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 물질이 나무인지 아닌지는 현미경으로 얇은 박편을 검사해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표본이 채취되었다면, 나무 세포들이 남아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수행될 필요가 있다.
그 장소와 관련하여 쉽게 대답될 수 있는 몇 개의 질문들이 있다. 그 지형은 배처럼 안이 오목한가? 그것 안쪽이 이후에 채워진 구조라는 증거가 있는가? 사람이 목재들을 다듬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그것의 전체 치수는 얼마인가? 그 주변에 어떤 종류의 암석이 있으며, 그 표본들의 정확한 화학적 그리고 현미경적 본질은 무엇인가?
현재까지 내가 가지고 있는 부분적인 정보에 의거하면, 나는 그 지형이 노아의 방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보들은 그것이 사람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라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지질학적 형태로 보인다. 나도 30여년 동안 방주를 찾는 일에 관여해 오고 있다. 그리고 노아의 방주가 실제로 존재하였음을 믿고 있고, 방주가 발견되었다는 보도를 듣고 싶다. 그러나 이번 발견은 아닌 것 같다.
*참조 : Has the Ark Been Found?
https://answersingenesis.org/noahs-ark/noahs-ark-found/has-ark-been-found/
Noah’s Ark, or … what?
https://creation.com/noahs-ark-or-what
Caution about ‘Ark’ discovery
http://www.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7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news/70
출처 - ICR News, Jul 7, 2006.
노아는 아라랏산 위에서 산소를 필요로 했는가?
(Did Noah need oxygen above the mountains?)
"만약 등반가들이 에베레스트 산과 같은 높은 산들을 올라갈 때 산소통을 필요로 한다면, 어떻게 노아와 그의 가족, 그리고 동물들은 방주가 산 위에 정박하였을 때 호흡을 할 수 있었는가?”
이 질문은 에베레스트 산이 오늘날과 같이 과거에도 높았었다는 것을, 그리고 홍수 물로 해수면이 올라갔을 것임에도 그 높이에서 기압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홍수 동안에 에베레스트 산은 오늘날과 같이 높지 않았다. 지구의 가장 높은 산지들도 그 꼭대기에 바다 생물 화석들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 산들이 한 때 바다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 가능성은 다음과 같다.
* 바다가 산들을 덮을 정도로 해수면이 올라갔다.
* 또는 산들은 한 때 바다 아래에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바다에서 나와 융기했다.
* 또는 이 둘이 같이 일어났다.
측정에 의하면, 에베레스트 산은 일 년에 15cm(6 인치) 정도 융기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이 상승률을 동일하게 과거로 적용한다면 (1년에 15cm로 8,848m의 현재 높이를 적용하면), 59,000년 전에 에베레스트 산은 해수면 높이였을 것이다. 만약 현재의 융기가 과거에 발생했던 엄청난 융기의 남아있는 여파였다면, 에베레스트 산의 기원은 노아 홍수 시기에 시작되었을 수 있다.
오늘날 창조과학자들은 히말라야 산맥과 같은 산지들은 아마도 홍수 동안과 홍수 이후에 일어난 지구 대륙판들의 격변적인 이동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측정되는 융기율은 과거에 훨씬 더 빨리 일어났던 과정들의 자취(remnant)라는 것이다.
산들이 만들어진 것은 홍수 말기에 육지를 뒤덮은 물들이 깊어진 바다 쪽으로 빠져 나가면서 이루어진 지질학적 과정의 한 부분으로 발생했다. 일부 산들은 홍수 이전에 존재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히말라야, 알프스, 안데스와 같은 것들은 없었다. 어쨌든 지구 상에는 전 육지를 뒤덮을 만한 충분한 물이 있다. 만약 모든 대양 분지들이 융기된다면, 높이가 3,000m 되는 산들도 모두 잠겨버릴 것이다.
홍수 물 위의 노아의 방주 - Films for Christ/Eden Communications의 ‘멸망된 세계’에서.
따라서 물들의 깊이가 9km 가 되지 않았고 더 적었다면, 이 질문은 더 이상 이슈가 되지 않는다. 만약 홍수물의 깊이가 9km 였다면, 노아와 가족들은 숨을 쉬는데 힘들었을까?
절대적으로 아니다. 기압(air pressure)은 압력을 경험하는 장소 위로 놓여져 있는 공기의 무게에 의해서 원인되어진다. 만약 물이 9km 깊이였다 하더라도, 9km 두께의 물이 차지해버린 공간에 있던 공기들은 지구 표면 위에 놓여진 9km의 물 위로 다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물 때문에 지구의 반경이 9 km 정도 증가하였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해 본다면, 물로 인해서 지구의 표면적은 약간 더 커졌을 것이다. 공기의 무게는 좀더 큰 지역으로 확장되어졌기 때문에 압력은 조금 줄어들 수 있다.
얼마나 기압이 감소되었을까? 그것은 0.3% 미만이다. 이것은 해발 고도 30 m(100 피트) 높이의 빌딩에 서있는 것과 동일하다! 또한 중력(공기의 무게에 영향을 주는)의 변화에 기인한 압력에 대한 영향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러므로 방주에 있던 사람과 동물들이 산소 탱크 없이도 숨 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음이 확실하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hristiananswers.net/q-aig/noah-above-mts.html ,
출처 -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133
참고 : 2505|1466|516|1422|1877|2243|2247|2069|765|269|2094|2754|568|512|299|1536|302|3020|1790|1756|2530|2321|2688|2996|3065|921|2362|1793|2030|3022|2805|2525|2643|2737|2960|1455|1458|3032
회색으로 덮인 대륙
: 호주의 놀라운 토끼 증식이 가르치고 있는 창세기의 대홍수
(The grey blanket)
Carl Wieland
동물들은 어떻게 중동 지역에 안착한 노아의 방주로부터 그렇게 짧은 기간에 지구의 가장 먼 구석까지 퍼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지구의 생물체들에 관한 성경적 역사의 신뢰성을 거부하기 위해 자주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성경 비판론자들은 숲을 생태학적 서식지로 가지고 있는 민감한 동물들이 아라랏 산에서 출발하여 호주 남단에 떨어져 있는 태즈메이니아 섬으로 이동하기까지 도중에 광대한 호주 내륙사막을 어떻게 건너갈 수 있었겠는가 라며 비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거부는 호주의 내륙 지역이 항상 건조했었다는 동일과정설적 가정(uniformitarian assumption)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호주의 내륙은 한때 울창한 열대림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1] 물론 시간 척도 상으로는 의견이 다르지만, 이 사실은 진화론자들과 창조론자들이 동일하게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대홍수는 급격한 기후 변화의 이상적인 메커니즘을 제공하였을 것이다. 대양의 (창세기 7:11, 8:2에 언급한 바와 같이 대부분은 지하에서 분출한) 따뜻한 물은 수백년 동안 막대한 증발을 통하여 엄청난 양의 습기를 대기에 추가했을 것이다. 지구의 추운 지역에서는, 수세기에 걸쳐 지상에 거대한 빙상(ice sheets)의 형성을 촉발하여 대빙하기(great Ice Age)를 열었을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명확한 증거들이 지구상에 남아있다.
지구의 다른 지역에는 강우량의 증가로 인해 울창한 열대림 혹은 아열대림을 형성했을 것이다. 이삼백년 후에 저장된 거대한 열의 일부를 대기로 내뿜으며 대양은 식어갔고, 오늘날의 온도 균형에 도달하였다. 이로 인해 호주 내륙과 같은 지역들은 현재의 기후로 안정되었다. 이제는 건조한 지역에 알맞은 식물들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일부 열대림의 잔재물은 건조된 상태로 현재의 불볕 더위 사막에 보존되었다.[2] 사하라(Sahara) 사막 또한 과거에 열대우림이 있었음에 모두들 동의하고 있다.[3]
또 하나의 명백한 문제는 아라랏 지역과 호주와 같은 먼 대륙 사이에 대양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서 설명한대로 홍수 후에 있었던 단기간의 빙하기는 수백만 입방킬로미터의 물들을 대양에서 제거하여 대륙에 거대한 빙상을 존재하게 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로 모두들 동의하는 바와 같이 해수면이 엄청나게 낮아져서, 오늘날의 바다도 그 때에는 통행이 가능한 육지였을 것이다.[4] 사실, 이것은 진화론자들이 수수께끼로 여기고 있는 동물들의 분포 상태에 관하여 오래 전부터 설명해온 것이다.[5]
그렇지만, 홍수 이후의 동물분산(post-Flood animal dispersion)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논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라고 생각하는 심리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각나는 장면은 한 쌍의 동물이 방주에서 나와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긴 여행을 떠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쌍이 그 엄청난 거리를 여행하며 생존하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그 수많은 동물들 모두가 한 쌍씩 동시에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러나, 성경은 개개의 쌍이 전체 거리를 여행했다고 기록하지는 않았다.
이것을 이해하고 또한 이러한 분산이 얼마나 빨리 발생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회색의 담요(the grey blanket)’라고 이름 붙여진 그 당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생물학적 침입(biological invasion) 중의 하나를 살펴보자. 토끼(rabbits)가 호주에서 정착하며 퍼져나간 속도는 기록상의 어떤 이주동물이 어떤 지역에서 달성한 경우보다 빠른 것이었다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6]
유럽인들이 도착하기 이전에 호주에는 토끼가 없었다. 1788년 최초의 선단이 도착했을 때부터 집토끼가 몇 번 반입되긴 했지만[7, 8], 호주 대륙에 대규모로 토끼들이 야생으로 살게 된 것은 1859년이었다.[9] 그 해에 대륙의 남동쪽 끝인 빅토리아 주 남부에 토마스 어스틴(Thomas Austin)이라는 지주가 자기 땅에 야생의 유럽토끼를 수렵 목적으로 방사했다. 어스틴은 나중에 토끼들의 파괴적인 공격에 호주를 시달리게 한 장본인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는 처음에는 매우 흡족해 했음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7년 후인 1866년에 수렵가들이 그의 땅에서만 14,253 마리의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10]
.호주 남부의 한 물웅덩이에 모여 있는 토끼들, 1938년 사진.
그 때, 어스틴의 토끼들은 이미 그의 소유지 경계선을 훨씬 벗어났고, 그의 성공을 보고서 다른 지역에서도 토끼들을 방사하기 시작했다. 1890년까지, 토끼들은 100만 평방 킬로미터를 훨씬 넘는 지역으로 퍼져 나갔다. 첫번째 방사 후 단지 51 년이 지난 1910년에, 그들의 자손들은 광대한 지역으로 이주하여 이 거대한 호주 대륙의 다른 끝인 서해안까지 퍼졌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통과지역에서 별도로 생긴 집단들을 동화시켰는데, 그 중에는 남부 호주의 큰 집단도 포함되어 있었다.
토끼들의 전파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지역적 방사가 역할을 하였겠지만, 호주의 토끼들은 불과 수십년 동안에 엄청난 거리를 퍼져 나갔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단의 토끼들은 꼬리표를 달아서 놓아 준지 불과 일년 만에 70km 떨어진 곳에서 붙잡혔다. 그렇지만, 토끼들의 놀라운 이동은 한 마리나 한 쌍의 토끼가 수천 km를 여행한 결과는 아니었다. 이들은 이전에 살지 않던 지역으로 개체수를 늘리며 점차적으로 확산(gradual spread)하여,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이었다.
창세기 대홍수 이후, 동물들이 전 세계로 이동하는 데에는 거의 방해요소가 없었다. 동물 개체군들은 연속적으로 사방의 텅 빈 생태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만일 호주의 토끼와 같은 실제 사례가 없었다면, 우리들은 직감적(gut feeling)으로 그런 이동에 수 만년이 걸렸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물론, 토끼들은 번식률이 유달리 높으며, 이미 언급한 사람들의 방사가 토끼들의 전파를 의도적으로 도운 것으로 믿어진다.[11] 그러나 이 도움을 상쇄하는 측면으로서 토끼는 원래 이동성 종이 아니라는 점이다. 토끼는 식물이 고갈되거나, 무리가 사멸할 지경이 되거나, 아니면 홍수나 화재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만 서식지를 떠나 다른 곳에 정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2]
어쨌거나, 아라랏 산에서 세계 구석구석까지 동물들의 이동이 모두 50년 내에 일어났다는 뜻은 아니다. 동물들은 수 세기(many centuries)에 걸쳐 광범위한 이동성과 번식율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많은 종류들은 오늘날에 보는 바와 같이 한 두 군데 지역에서만 살아남기 전에, 여러 곳에서 정착했을지도 모른다. 화석화는 동물들을 갑자기 매몰시키는 재난 등의 특수한 경우에만 발생한다. 따라서 이들 동물들의 이동경로에서, 특히 정착했다가 나중에 멸절된 곳에서 화석으로 발견될 가능성은 낮다. 호주대륙을 가로질러 퍼질 때에도 토끼들은 어떤 화석도 남겨놓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실제 동물들의 확산과 이동속도에 근거한 현실적인 계산에 의하면, 육상척추동물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은[13] 현실과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2)”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생물학, 지질학, 그리고 현실에서 겪는 세상일에 관한 것도 믿지 못한다면, 우리의 영원한 운명에 관해서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White, M.E., The greening of Gondwana, Reed Books, New South Wales, Australia, p. 40, 1994.
2. White, M.E., After the greening: the browning of Australia, Kangaroo Press, New South Wales, Australia, 78–92, 1994.
3. Note also that the high selection pressure after the Flood, as animals occupied empty niches, would have resulted in increased specialization as the gene pool narrowed. Thus, animals today will often be less robust and less genetically diverse than their ancestors, who will thus be inappropriately judged incapable of such migrations.
4. Secular geologists also recognize that there were great vertical land movements in the Pleistocene, the rock system most associated with the Ice Age. Thus, the existing sea floor levels may have varied by hundreds of metres in either direction.
5. For much greater detail, see Batten, D. (Ed.), The Answers Book, Brisbane, Australia, chapter 16, 1999.
6. Stodart, E. and Parer, I., Colonisation of Australia by the Rabbit, Project Report No. 6, 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 (Australia) Division of Wildlife and Ecology, p. 16, 1988.
7. Cobley J., Sydney Cove 1788, Angus & Robertson Publishers, London, p. 154; ref. 6, p. 4, 1962.
8. Coman, B., Tooth & Nail: The story of the rabbit in Australia, Text Publishing, Melbourne, Australia, pp. 13–14, 1999.
9. Ref. 8, p. 18; Rabbits had become feral in Tasmania earlier.
10. Rolls, E.C., They All Ran Wild: The story of pests on the land in Australia, Angus & Robertson, London, p. 26, 1977.
11. This cuts both ways, of course, since humans may have assisted post-Ararat migration. Just as the rabbit was brought to Australia by boat, people (who could have been building boats soon after the Flood) may have carried all manner of creatures to other land masses, whether or not these had land bridge access.
12. Ref. 10, p. 27.
13. The biblical criteria for the animals on the Ark likely limited their ranks to non-marine vertebrates (animals with backbones). See The Answers Book, ref. 5, chapter 13.
두꺼비의 이동
토끼의 빠른 이동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라는 것은 같은 대륙에서 아주 다른 동물인 퀸스랜드 주의 사탕수수 두꺼비(cane toad)의 경우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못생긴 모습의 파나마왕두꺼비(Bufo marinus)는 중미와 남미가 원산지이다. 1935년에 북쪽 퀸스랜드 주에서 사탕수수 산업을 황폐화시키고 있었던 딱정벌레(greyback beetles)를 통제하기 위해 일부러 이 두꺼비를 하와이로부터 들여와 방사하였다.
불과 10여년 만에 이 두꺼비들은 약 2,000 km나 떨어진 같은 주의 브리즈번(Brisbane)에까지 퍼졌다. 피부의 독샘(venom glands) 때문에 모두가 질색을 하는 이 생물은 뉴 사우스 웨일스(New South Wales) 주와 노턴 테리토리(Northern Territory)까지 퍼졌다. 지역에 따라 이들의 전파속도는 연간 5 내지 50 km나 되었다.
Sour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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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the-grey-blanket
출처 - Creation 25(4):45–47, September 2003.